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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노망

          
Part1

2003년 4월, 만화 <궁>이 연재되던 격주간 순정만화잡지 윙크에서 처음으로 가상 캐스팅 이벤트를 벌였다. 이 만화에 대한 영화 및 드라마 제의가 미친 듯이 밀려들기 직전의 일이다. 순전히 재미로 해본 가상 캐스팅이었다. 그때 원작자가 원하는 캐스팅으로 이율 역 김정훈이 끼어 있었다. 당시 김정훈의 연기경력은 '오렌지'가 전부였다. 실제 드라마화가 추진되기 시작한 후, 이신 역에 오르내린 남자 배우는 많았지만 이율 역은 상대적으로 작은 역이라 그닥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판권 계약 후 1년 반이 넘게 흐른 후에야 드디어 캐스팅이 발표되었다. 후보에 올랐다는 기사 보도 이후 대본 리딩에 들어갔다는 보도, 그 후 MBC의 캐스팅 승인을 마친 후 정식으로 캐스팅이 발표되었고, 본격적인 제작이 시작되었다.

히스토리 캡처

1) 만화에서
왕위 계승서열 2위인 왕자로 이신보다 몇 달 늦게 태어난 동갑 사촌이다. 동생이긴 하지만 세자의 아들로 후일 왕위를 물려받을 세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사한 후, 세자위는 다섯 살 아기 세손에게 가지 않고 세자의 동생에게 넘겨졌으며, 이율은 과부가 된 어머니와 곧바로 영국으로 출국해서 거기서 자랐다. 자유분방한 옷차림과 아름다운 용모, 상냥한 배려를 겸비한 꽃미남이지만 속은 깊고 어둡다. 열일곱의 나이가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곳에서 그는 사촌의 아내인 신채경을 만나고, 그녀에게 이끌리면서 자신이 가졌어야 할 세자의 자리, 왕의 자리 그리고 채경의 남편 자리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야심에 동조하는 듯하지만 은근히 마이페이스인 인물.

2) 드라마에서
아버지 효열태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5살에 출국해 19살까지 영국에서 지냈다. 신에 비해 궁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율은 타고난 낙천적인 성품과 자연스러운 태도, 모르는 게 없는 박학다식한 지식으로 모두에게 호감을 받는다. 행동에 앞서 깊이 생각하고 돌아가는 스타일. 홀로 자신을 키우며 고독한 시간을 보낸 어머니에 대해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어머니의 탐욕을 이해한다. 한국으로 전학하던 날 만난 채경의 모습에 호감을 품었던 율은 돌아가신 선황의 약속이 '황위를 이을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황위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될 만큼 채경을 사랑하게 된다.

Part1

김정훈이 이율 역을 맡는다는 사실에 대해 태클을 걸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는 외모적으로 화사한 꽃미남과인 만화 속의 이율을 꼭 닮았기 때문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어느 정도 만화 캐릭터를 실사화하길 바랐으며, 그 조건에서 볼 때 김정훈은 최상급의 캐스팅이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서브메인이었기 때문에 이신 역에 쏠린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역시 주인공이 아니란 이유로 지금까지의 불만족스럽고 빈약한 연기 경력도 그렇게 장애가 되진 않았다. 방영 전 관련 설문조사에서 김정훈은 아무리 마이너라도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유일한 출연진이어서 압도적으로 일위를 달리곤 했다.
특히 1집 'You are the one' 시절의 금발 단발 콘셉트는 누가 봐도 이의를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이율과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은 그 시절보다 4년이나 뒤였고;; 머리 염색도 환한 탈색이 아닌 갈색톤으로 정리되었지만 그의 이율 역 싱크로율은 단연 높았다. 이렇게 기대를 모은 것은 후에 드라마가 방영된 후에 '반전'의 베이스로 악용되어 빠들의 한숨거리가 되었다.
사족을 달자면 그가 새로 정한 기획사 유아원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제작사인 에이트픽스와 계열사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자사 연기자에 대한 특혜 따윈 전혀 없는 듯하다. 물론 김정훈은 원하는 것(그 원한의 '밴')을 손에 넣었으니 억울하기까진 않아도 될 것이다.

Part1

1) 무존재, 누가 얠 서브메인이라고 했어?


예감이 심상치 않아졌던 것은 바로 예고가 방영되었을 때. 그 유명한 '바람 맞는 자세'가 다였다. 대사를 치는 장면도 하나 없고... 헉? 설마? 싶은 마음으로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보여진 시사용 필름에서도 그 장면 하나였다.

1회에서는 자다가 일어나는 장면 하나.
2회와 3회도 논하기 싫을 정도의 분량... (그의 대사를 외울 정도로 적은 분량!!!)
그의 무존재스러움은 6회까지 계속되었다. 계속 빵긋거리며 가끔씩 땀방울을 흘리게 하는 발성으로 말을 하는 그를 지켜보는 것은 괴로웠지만, 사실 연기의 질보다도 더 괴로운 것은 그의 어처구니없는 적은 비중이었다. 대본에 있던 이율 부분은 신채 라인이 강조되면서 뭉텅뭉텅 잘려져나갔다.

그나마 건질 만했던 것은 7회의 거울 장면... 그 장면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기사에 나기도 했는데,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꼽힐 만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스가운 밑에 난닝구를 입어준 안타까운 왕자의 패션센스. 운동도 했으면서 왜 그런 거야...
확 열어제낄 수 있는 맨살이 좋았잖아!!!

가장 활발한 의견 개진을 보인 디씨궁갤러리에서 김정훈은 '백합'이란 별칭을 얻었고, 이후 석 달간 김정훈이라는 이름보단 백합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많이 불렸다.

2) 그의 사랑과 함께 배부른 욕먹기가 시작되다


9회부터 정말로 사각관계의 한 축으로서의 율의 역할이 본격화되었다. 영농후계자가 대한민국 선진농법을 태국에 전파하러 간 사이(!) 그는 사촌형수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힘들어하는 채경을 데리고 나간 죄로 재섭는(율빠의 눈엔 그녀가 프란체다) 황후에게 조낸 깨지고 난 이율은, 어머니에게 자발적으로 황제가 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윌리엄 방한 시퀀스에서 환상적인 비주얼과 활약상을 보인 그가, 또 두각을 나타냈던 좋은 대사치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너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이율 특유의 '조곤조곤' 말투에 살짝 담긴 원망과 핀잔이 보는 누나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우리가 널 격하게 사랑한단 말이다!

채경이 쓰러질 때 이마를 까보이며 날아왔지만 닭 쫓던 개여야 했던 이율, 등 뒤에서 째려본 이율, 등 뒤에서 '돌려받아야 할 것'에 대해 얘기한 이율은 13회에서 머리를 물들인 후에 본격적으로 유부녀에게 들이대기 시작한다. 신채주의자의 화려한 추억 뒤로, 요상한 편집에 의해 '더러워'가 화제로 떠오른 것도 이때다.

이후 '더러워'는 궁을 시청한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하는 명대사가 되었으나, 율빠(정훈빠)에게는 가장 심한 스크라치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빠들은 자기들 사이에선 '더러워'를 말할 수 있지만, 자신 주변의 어떤 일반인에게도 '더러워'를 듣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채경과의 황홀한 '땡땡이'의 대가로 기다린 것은 사촌의 싸대기(이 쥐길놈의 영농후계자!)였고, 그 뒤로 이 두 사촌의 냉랭한 분위기는 계속 악화일로를 걷는다. 황실 오찬 장면의 "곧 그렇게 될 거야."는 이신에게의 선전포고다.

 

그리고 대사 한 마디 없이 사람을 얼어붙게 하던 최고의 어둠 포스, 회 먹는 장면이 나왔다. 채식주의자이던 이율이 남의 살을 입에 넣는 장면, 그 얼음 같은 섹시함과 냉정함은 잊을 수 없다. (비록 고기 먹은 값을 그 뒤로 못한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이율은 황제의 신임을 얻으며, 채경에게 궁을 떠날 것을 속삭이는 신채주의자의 공적으로 떠오른다. 칠칠맞은 비궁이 속상해서 나갔던 고수부지에서 차를 분실하면서 '함께 있던 젊은 남자' 이율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힘겨운 거짓말이 시작되고, 이율의 '이혼해' 공격은 너무나 지리멸렬하여 정말 이쁜 거 하나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고 있던 많은 율빠들까지 화나게 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이혼 공세는 20회에서 마무리되었다.

 

3) 찰나의 빛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불꽃처럼


자신이 사주한 이혼 발언 때문에 곤경에 처한 채경을 보며, 계획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도 이율은 가슴아파 자꾸 뒤돌아본다. 그녀가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을 시작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고대죄라는 가슴 철렁한 어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던 이율은 자신의 사랑을 황실 어른들 앞에서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까발려버린다.

"예, 폐하. 비궁마마를 깊이 연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예정된 파국, 마치 바윗돌이 고갯길 굴러내려가듯... 사랑도 짓밟히고, 입지도 짓밟힌다.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1초, 그리고 그 뒤의 무저갱 같은 절망. 모든 율빠들을 단숨에 안티채경으로 돌아서게 했던 문제의 이천오백만년 강타. 야, 이 지지배야. 인생 그렇게 단정하지 마셔!

"왜 나는 안 되니? 이렇게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21회부턴 얼음연못과 함께 장마철처럼 내리는 이율의 비 때문에 많은 팬들이 울었다. 몇몇 새로운 팬들을 낚은 것도 이 부분이라고 한다. 떨리는 목소리에서 슬픔이 진저리치게 묻어났던 그의 모습은 처음부터 예정되었던 비극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23, 24회에서의 이율은 ...많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용감하였던 어린 왕자는, 황실의 알 수 없는 법도의 세계와 이기적인 여자아이의 외면에 치여 유일한 가족이자 연인이었던 엄마에게 돌아간다.

드라마 '궁'의 엔딩은 신채주의자들에게도 비웃음을 샀을 정도로 어처구니없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어쨌든 엠빙신이 오랜만에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으며 그래서 시즌2라는 유례없는 삽질도 할 모양이다. 하지만 해도 안 해도 상관없는데, 이율은 다시 잔인한 황실로 불러들일 생각 말기를. 우리의 한떨기 백합은 자신이 살던 아름다운 별로 돌아갔으니까.

빛을 타고.

Part1

아름다운 그를 아름다운 화면 속에서 즐감하는 기쁨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드라마 방영이 끝났다. 그런 의미에서 정훈노망에서 자체 조사한 앙케트 결과를 재미삼아 보자.

1) 최고의 의상


뭘 입어도 예뻐 미치겠다는 누나들의 격렬한 몸부림과 고민 속에 선정된 1위는 바로... 생일파리~ 의상, 핫핑크 니트에 흰 바지. 그간 김씨답지 않게 열심히 만든 가슴살이 깊이 파인 니트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고. 요염하면서도 주렁주렁하지 않아 절제되고 청순한 느낌도 주었다. 라네즈 광고에 써도 될 정도의 색감.                                    


2위를 차지한 것은 본인이 벗은 지 어림잡아 10년이 됐을 교복 패션. 정말 이렇게 귀티가 흐르는 고삐리를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 드라마 전반적으로 여러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김정훈이 정말로 열아홉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3위는 양갱상궁으로 알려진 서 상궁의 충성 맹세 때 꽃냄새를 맡던 샛노란 니트. 아이구야~ 캐청순!             


이 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기타 의견들. 죄송하지만 한 파일로 감상하시길.             


2) 최고의 대사

이미 드라마 부분에서 다루었던 대사들이 1,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예, 폐하. 비궁마마를 몹시 연모하고 있습니다."
2위는 "사람의 마음은 종이가 아니어서 마음대로 펼 수도 접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3위는 역시 예상대로 이천오백만년 어택으로 재기불능 상태가 될 때의 대사... 이 장면 때문에 많은 누나들이 질질 짰다고.
"그때도 기다릴게... 왜 난 안 되니? 이렇게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3) 최고의 주변 등장인물

1위는... 정말 뜻밖의 인물이 차지했다. 바로 단지! 그녀가 들이댈 때마다 정훈이가 보여준 그 환한 웃음이 그녀가 최고의 등장인물이 되었던 원인이라고.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줘서 백만 번 쌩유라는 정훈퐈들의 이 마음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단지 씨, 솔직히 말씀하시죠. 당신도 연기만은 아니었겠죠?

2위는 원래 1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예상했던 율이 엄마 화영 씨, 혜정전, 태후 마마. 그녀의 안타깝고 비뚤어진 모정도 모정이지만, 아무래도 아들과 연출한 그 연인삘의 장면들 때문에 완소가 되지 않았을까. 후후~ 사실 대본에서 두 사람은 훨씬 더 심하게 밀착 상태였으나 많이 편집되었다. 올가미가 따로 없었을 텐데...

3위는 캐리폐하. 공명정대하게 황태자의 자질을 갖춘 이율을 알아봐준 작은아버지시다. 비록 24회에선 죽도록 사랑하던 여인이 불구가 되었건, 안타깝게 간 형님의 아들이 개 쫓기듯 쫓겨나든 아들과의 화해와 하야에만 관심이 많으셨던 분이지만, 어쨌든 우리 애 기 살려주신 황제폐하, 옛추억에 건배.

4) 최고의 연기

옛날 같으면 표정만 나오는 부분일 텐데... 우리 정훈이 연기가 우찌나 늘었는지, 대사 친 부분들이 귀에서 맴돈다. 아이구~ 기특한 것. 명대사 부분과 좀 많이 겹치지만, 그래도 점검.
1위는 2천5백만 년 후에도 기회를 안 준다는 발칙한 기집애 때문에 천국과 지옥의 롤러코스터 타던 장면, 2위는 가족들 앞에서 당당히 사랑을 인정하는 순교자의 모습이 차지했다. 3위는 바로~ 회 집어먹는 장면! 서늘하고 요염하면서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겼던 그의 모습, 잊기 힘들 듯하다.

그 외에 학교에서 채경에게 고백하고 땡땡이치자고 말하는 장면('땡땡이치까'의 그 귀여움이라니...), 떡볶이 먹는 장면, 엄마한테 큰일난 줄 알고 식겁하는 장면, 사랑으로 엉망운전 신채경의 뒤를 쫓아가는 장면, 자기 운명이 슬프다고 땡깡 놓는 장면, 농부와 맞짱뜨는 장면 등이 언급되었다. 사실 나올 때마다 명연기, 나올 때마다 명장면이어서... (퍽!)

Part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가 중심 잃고 갈짓자로 걷는 드라마 속에서 욕을 배불리 얻어먹고 결국 처참하게 퇴장당하는 모습은 전혀 즐겁지 못했다. 게다가 갑자기 스타덤에 오른 주인공 커플에 비하면 실익이라 할 것도 별로 거두지 못했음에야.
하지만 그가 정말로 '연기'를 보여줬던 것, 그 연기로 진심으로 울게 만들어줬던 것, 결국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줬던 것에는 날것 그대로의 감동을 받았다. 연기자로서의 김정훈이 생각보다 빨리 완성될 수 있겠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던 그의 첫 서브메인 미니시리즈 '궁'. 그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주인공 역할이 빨리 돌아와서, 그가 또 우리를 놀래켜주는 일을 즐겁게 기다리고 싶다.

자기 힘으로 백합이 되었고, 자기 힘으로 이율을 완결한 우리의 왕자님 김정훈에게 박수.

이미지 출처 :차차 님, 백합 님, 그리고 궁갤의 라팜팜 님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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